[칼럼]처서비[處暑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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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처서비[處暑雨]

처서를 맞은 농촌 풍경.jpg
사진은 처서를 맞은 농촌 풍경

 

 

 

 

 

[칼럼]처서비[處暑雨]

 

 

오늘이 24절기 중 열네 번째 절기 처서(處暑).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處暑雨]’라고 한다, 옛 선조들은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을 감한다.’고 하거나 독 안에 든 쌀이 줄어든다.’고 했다. 처서에 비가 오면 그동안 잘 자라던 곡식도 흉작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벼가 맑은 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받아야 나불거리며 익어가는데 비가 내리면 벼가 제대로 영글지 못하고 썩기 때문이다. 이는 처서 무렵의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짐작할 수 있는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반영된 말이다.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백석을 감한다.’고 했다고 한다. 전북 부안과 청산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고 했다. 예로부터 부안과 청산은 대추농사로 유명하다. 대추가 맺히기 시작하는 처서를 전후해 비가 내리면 대추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고 혼사를 앞둔 큰 애기들은 혼수장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으리라. 이런 이유로 처서 비는 농사에 쓸모없는 비다. 그러므로 처서 비를 몹시 꺼리고 이날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처서는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든다. 처서는 여름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게 된다는 의미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할 정도로 계절의 순행이 나타나는 때다. 이러한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고려사(高麗史)에는처서의 15일 간을 5일씩 3분해 첫 5일 초후(初侯)에는 매가 새를 잡아 제를 지내고, 두 번째 5일에는 천지에 가을 기운이 돌며, 세 번째 5일 말후에는 곡식이 익어간다.”고 했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했다. 예전에 부인들과 선비들은 이 무렵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그늘에서 말리거나 햇볕에 말렸다고 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파리, 모기의 극성도 사라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또 이 무렵은 음력 715일 백중(百中)의 호미씻이[洗鋤宴]도 끝나는 시기여서 농사철 중에 비교적 한가한 때다. 그래서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란 말도 있다.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뜻이다. 다른 때보다 그만큼 한가한 농사철이라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다.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비록 가을의 기운이 왔다고는 하지만 햇살은 여전히 왕성해야 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한다. 처서 무렵이면 벼의 이삭이 패는 때이고, 이때 강한 햇살을 받아야만 벼가 성숙할 수 있다. 무엇이 한꺼번에 성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처서 무렵의 벼가 얼마나 성장하는가를 잘 나타내는 속담이다.

농사의 풍흉에 대한 농부의 관심은 크기 때문에 처서의 날씨에 대한 관심도 컸고, 이에 따른 농점(農占)도 다양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부터 강한 처서비[處暑雨]’가 내리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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