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남자 영원한 MC 송해 별세,향년 9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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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요일의 남자 영원한 MC 송해 별세,향년 9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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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남자 영원한 MC 송해 별세,향년 95

 

 

 

 

 

눈 감기 전에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무대를 열고 싶다던 일요일의 남자 영원한 MC 송해(본명 송복희)8일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95

고인은 지난달 14일 건강 문제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후 퇴원한 상태였다.

그는 1988년부터 34년간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지휘봉을 잡았다. 지난 4월 말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돼 5월 공식 공표됐다. 그는 진정 세계가 인정한 MC.

미스터트롯’(2020)의 스타 임영웅, 이찬원, 정동원, 김희재, 김수찬은 물론 미스트롯’(2019)의 송가인, 국악소녀 송소희, 오마이걸 승희와 별도 전국 노래자랑이 낳은 스타들이다. 흥에 겨운 춤사위와 노래 솜씨로 분위기를 북돋웠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그는 천상 예능인이자상대를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친화력을 가졌다"고 칭송한다. 과거 신재동 전국노래자랑 악단장은 딴따라라는 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라 했다.후배 MC 강호동은 송해와의 첫 만남을 회고하면서 보자마자 씨름을 하자고 했던 송해 선생님이라고 추억했다.

그는 생전에 전국 팔도 안다녀 본 곳이 없다. 평양도 가고, 금강산도 갔다. 하지만 고향 땅만큼은 밟아보질 못했다. 황해도 재령 태생인 송해는 어릴 때부터 끼 많은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황해도 해주예술전문학교에 입학해서 성악을 공부했다. 그 인연으로 월남 이후 창극단에서 일하기도 한다.

6·25 전쟁 당시엔 통신병으로 근무했다. 송해는 과거 방송에서 휴전 전보를 내가 쳤다. 그런데 내가 그걸 치고 고향에 못 가게 됐다. 내가 돌아갈 길을 내가 끊은 셈이다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와 헤어진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이틀 뒤에 옵니다.” 평소에 별말씀 없으시던 어머니가 그때는 이번엔 조심해라라고 했다. 그 뒤에 어머니 얼굴은 보지 못했다. 송해가 2015년 발표한 노래 유랑청춘은 그 당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눈물 어린 툇마루에/손 흔들던 어머니/길 떠나는 우리 아들 조심하거라/그 소리 아득하니 벌써 70/보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엄마여/재 넘어 길 떠나는 유랑 청춘아/’

연평도에서 미 군함을 타고 부산에 도착한 송해는 바다를 건너며 바다 해()’자를 예명으로 썼다. 어린 시절 송복희가 지금의 송해가 된 것이다. 1955년 유랑극단 창공악극단으로 가수 활동했다.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 이순주 등 당대 유명한 재담꾼들과 함께 극장 쇼무대를 누볐다.

특히 여성 코미디언이자 MC로 유명했던 이순주와 1970TBC 동양방송 라디오프로그램 웃음의 파노라마에서 명콤비로 불리며 MBC ‘웃으면 복이와요등에서도 코미디언으로 활약했다.

일상인으로 송해는 소박함 그 자체다. 방송인의 필수라는 큐카드가 없었든 그에겐 현대인에 필수로 보이는 자동차와 스마트 폰이 없다. 누룽지에 김치찌개, 계란 후라이로 하루를 시작하고, 자택인 역삼동에서 자주 찾는 종로까지 항상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주당인 송해가 해장을 위해 단골로 다닌 2000원 우거지국밥 집은 송해 국밥으로 유명해졌다.  

1974년부터 KBS 교통전문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17년간 진행했던 그가 중도하차한 데엔 당시 대학생이던 아들 창진의 오토바이 사망 사고 때문. 송해는 사고 직후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들의 아버지, 살려줘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2018년엔 평생을 함께하자던 아내 마저도 그의 곁을 떠났다.

그가 일요일마다 출연진에 건넨 딩동댕은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일 수 있지만, 스스로를 향한 응어리진 메아리일 수도 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임종도 지키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가수가 되고 싶어한 아들을 극구 반대하며 꿈을 풀어주지 못한 회한, 그토록 바랐던 고향을 결국을 밟지 못하는 현실.

그는 올초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탈락을 뜻하는) 땡과 (합격을 말하는) 딩동댕 중 뭐가 더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땡을 받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른다.”

좋아하는 술 한 잔에 우거지 국을 들이키고,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던 그는 이제 영원히 깊은 잠에 들었다

 

 

 

dus0218@newsport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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