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로림만 웅도의 제천성지 보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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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가로림만 웅도의 제천성지 보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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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서산향토문화연구소장

 

 

[기고]가로림만 웅도의 제천성지 보존하자

 

 

 서산향토문화연구소장 박성호

 

 

 

서산 가로림만 해양공원 조성을 앞두고 온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환영하며, 이에 대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가로림만은 지리적, 환경적 가치뿐만 아니라 동식물 등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세계 5대 갯벌에 속해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자연 해양생태 보고(寶庫)이다.

정부는 2448억 원을 들여 159.85평방km의 갯벌정원을 비롯, 전시관. 생태학교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세계적관광지로 조성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로림만 내에는 몇 개의 섬이 있다. 그 중 웅도(熊島)는 고대역사가 살아있다.

웅도는 현재 대산읍 대로리와 연육돼 있다. 면적은 1.68평방km, 해안선 길이 약 5km에 달하는 아담하고 운치 있는 섬이다. 현재 67세대, 134명이 살고 있으며, 최근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지면서 주말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

이 섬은 아직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와 아름다운 섬마을의 전통이 살아있는 곳으로 고대로부터 사람이 살아온 성스러운 땅이다.

 

웅도(熊島)의 참성단(塹星壇)

서강대 김영덕 명예교수 일행은 2017년경 참성단을 탐방한바 있다.

현재 폐교된 웅도초등학교 뒤편, 산길 계단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정상에 이른다. 높이 90m 되는 산 정상에는 가로 25m. 세로4m 정도의 돌무더기가 있다.

이곳은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마니산(摩尼山. 472.1m) 천제단과 맥을 같이하며 천제를 지내던 신성한 제단으로 본다.

마니산 참성단은 천제(天祭)를 올리는 제천제단(祭天祭壇)으로 매년 103일 강화군에서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또한 전국체전에 앞서 선녀들이 성화를 채화하는 곳이기도 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강화도 참성단은 우리나라에서 생기(生氣)가 가장 강한 곳이기에 단군의 천제단을 이곳에 설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향토사학자 김성호(金聖昊)는 그의 저서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에서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고조선 준왕(準王)은 좌우 궁인을 이끌고 남하해 한()을 세웠다. 조선의 준왕은 단군의 웅녀탄생 설(熊女誕生 說)과 연계되는 웅계(熊系)의 혈통을 가진 집단으로 이들이 이동하는 곳마다 웅계(熊系) 지명을 남겼다. 웅계 지명은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지만 특히 황해도 이남 서해안 쪽으로 많이 분포돼 한전(韓前)에 기록된 남하 기록과 일치한다.

준왕의 후손들이 바다를 통해 남하하면서 가로림만으로 들어와 최초 정착한 곳이 웅도였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웅도(熊島)라는 섬 이름 자체도 웅녀의 신화에 의한 웅계(熊系) 후손들이 정착하면서 부쳐진 이름으로 본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섬의 모양이 곰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과 과거에 이 섬에 곰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웅도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설득력이 약하다.

전국에 웅계(熊系) 지명이 있는 곳은 45개소이며 충청도에는 5개소가 있다. 즉 충북 영동에 웅북리(熊北里), 충남 서산에 웅도리(熊島里). 보령에 웅천면(熊川面). 공주 웅진리(熊津里). 신웅리(新熊里) 등인데 웅도(熊島)라는 지명에 제단을 설치하고 천제를 지내던 곳은 서산 웅도리 뿐이다.

강화도 마니산에 천제단 보다 규모는 작지만 웅도에도 천제를 지내던 참성단이 있다는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웅도리 참성단의 역사적 가치

서산 웅도리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은우(李殷祐)씨가 쓴 서산의 문화기록에 보면 웅도리 주민들은 예로부터 이 참성단(塹星壇)을 신성시해서 풀 한 포기 나뭇가지 하나 건드리는 것도 금기시 해 왔다고 한다. 아무리 땔감이 없어도 참성단 주변의 나무는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고 만약 이곳에 나무를 훼손하면 반드시 화를 당하기 때문에 현재도 이산의 나무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에는 이곳에 오래된 노송들이 즐비했지만 솔잎혹파리 피해로 많이 고사됐다. 8.15광복 이전까지 마을의 몇몇 무속인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해 이곳에 제물을 차려놓고 제를 지냈다고 한다.

광복이 되자 전 동민들이 풍악을 울리며 무속인의 집례로 이곳에서 제를 올린바 있으나 그 후로는 개별적으로 제를 올린다고 한다. 그러나 1992년 웅도리에 불행한 일이 가끔 일어나 마을 공동으로 다시 무속인을 불러 크게 제를 올린바 있으며 그 후로는 마을에 불상사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서강대 김영덕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 미치/미추홀의 역사에서 백제의 시조 온조의 형 비류가 미추홀(인천)에 나라를 세웠으며, 나라 이름을 미치라고 하였다. 미치나라는 345년까지 존속 되었다가 백제에 통합되었다.

미치나라의 성산인 강화도 마니산에도 천제를 올리는 네모난 돌 제단이 있고, 또 성산인 문학산에도 제단이 있으며, 한성에 있는 검단산에도 검단이라는 돌 제단이 있다. 이러한 돌 제단이 미치 사람들이 살던 충남 서산에서도 볼 수 있다. 즉 서산 가로림만 물굽이 안에 있는 곰섬(熊島)에도 네모난 돌 제단이 낮은 산꼭대기에 아직도 있으며, 굿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음암면 두름배 마을에는 큰 바위 앞에 돌 제단을 만들어 놓고 해마다 제를 올리고 있다.

특히 두름배 마을에 덕수이씨 종중산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에도 덕수 곧 다무로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 짐작된다. 더구나 다무로 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미치 사람들의 후손일 것이다. 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오오미신사와 이소노가미 신궁에서도 미치의 신령이 깃들어있는 돌무더기에 다무로의 조상신 후루(비류를 일본어로 후루)신령이 깃들어 있어 이를 받들고 있다. 음암면 부장리 유적지에서 금동관모, 금동신발, 귀걸이 등 꾸미개가 나왔는데 이 고장에 백제시대에 다무로(담로)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즉 마한시대의 미치세력의 문화가 백제시대의 다무로 정치로 이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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