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서산에 가볼 만한 곳 1000년 고찰 ‘보원사지’

기사입력 2021.12.31 07:38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제103호).jpg
    사진은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제103호) 모습
     

     

    보원사지 법인국사탑과 법인국사탑비 모습.jpg
    사진은 법인국사보승탑과 보승탑비 모습
     

     

    보원사지 석조(石槽, 보물 제102호)1.jpg
    사진은 보원사지 석조(石槽, 보물 제102호)모습

     

     

     

     

     

     

    서산에 가볼 만한 곳 1000년 고찰 보원사지

     

     

     

     

    백제의 흔적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서산=뉴스포탈)=보원사지는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절터다. 통일신라 이전부터 사찰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원사지는 가야산 북쪽 상왕산(象王山, 307.1m)에 위치해 있으며 102886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고려 광종 때 법인국사탄문이 파견될 정도로 국가에서 관리하던 큰 사찰이었고 조선시대 신동국여지승람(1530)'보원사가 상왕산에 있다'는 기록으로 볼 때 16세기까지 그 사세가 지속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316호다. 10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石槽, 보물 제102), 당간지주(보물 제103).오층석탑(보물 제104),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 보물 제105법인국사보승탑비(보물 제106) 등의 유물과 초석이 남아 있다.

    상왕산 서남쪽 계곡에는 보원마을이 있었으나 1970년대 이 일대에서 대대적인 목장경영으로 인해 마을주민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고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특히 1968년 절터에서 백제시대의 금동여래입상(높이 9.5)과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높이 7.5)이 발견됐다  

    보원사지 석조(石槽, 보물 제102)

    화강석 돌로 만든 것으로 절터에서 물을 담아 쓰던 용기다. 안쪽과 위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은 거칠게 다듬은 것으로 보아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제103)

    기도(祈禱)나 불교의식 때 부처와 보살의 성덕을 표시하는 기()의 깃대를 지탱하기 위해 세운 두 개의 받침대다. 형태는 지주 밑에 사각형의 대석이 마련되고 지주 사이에 원형 간대를 놓아 지주를 고정시킨 것이다. 당간은 철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의미를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다는 깃대다.보원사지 당간지주는 멀리서 봐도 이 절터가 얼마나 큰 사찰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까지 1000년 동안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04)

    통일신라~고려조의 전형적인 석탑으로 2단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다. 1968년 석탑 해체 보수시 4층 탑신부에서 사리장엄구(사리를 봉안하는 일체의 장치)가 발견됐다.형태는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높이가 9m나 되는 이 탑은 체감률이 급격하게 솟아 보이면서도 지붕돌들이 넉넉하게 펼쳐져서 안정감을 갖추고 있다. 상층 기단도 기둥 모양을 새겨 칸을 나누고 한 면에 둘씩 팔 부 신중을 새겨 놓았다. 그중 두 번째에 있는 아수라상이 가장 선명하다. 아수라상은 인체비례는 매우 현실적이며 조각 솜씨가 뛰어난 작품이다. 원래 탑은 탑파의 줄인 말로 산스크리트어로 스투파에서 유래한다. 탑은 부처님 사리를 모시기 위해서 만들었다. 나중에는 탑을 많이 만들면서 부처님 사리가 모자라게 되자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넣게 되는데 이것을 법신사리라 했다. , 부처님을 형상화한 불상오 넣었는데 변신사리라 했다. 탑은 탑을 받치는 기단부와 탑의 몸체를 이루는 탑신부, 윗부분에 해당하는 상륜부의 세부분으로 나뉜다. 기단부는 상대기단과 하대기단으로 나누어지는데 경우에 따라 하대기단은 생략되기도 하고, 탑신부는 탑의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면석과 면석위에 올려져 있는 옥개석의 갯수를 통해 탑의 층수를 이루게 된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보주, 용차, 수개, 부연의 여러 부분으로 세분된다.  

    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 보물 제105)

    법인국사 탄문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운 부도탑이다. 법인국사(900~975)968년에 광종으로부터 왕사(王師)로 봉해졌고, 974년 국사(國師)로 책봉됐다. 975년에 보원사로 돌아와 입적해 부도탑을 세우고 사리를 안치했다.  

    법인국사보승탑비(보물 제106)

    ()에는 법인국사 탄문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법인국사 탄문(900~975)은 휘가 탄문, 자는 대오, 성은 고씨로 광주 고봉출생이다. 15세가 되던 해 신엄율사에게 구족계를 받고 출가했다. 탄문은 광종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교선융합을 주창하면서 불교계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975년 경종이 즉위해 김정언에게 비문을 찬하도록 하였고, 탑비는 한윤이 쓰고, 김승렴이 각자하여 9784월 법인국사의 보승탑비를 세웠다. 귀부, 비신, 이수가 완전하게 남아있는 보기 드문 대형 비이다. 절터 뒤쪽에 부도비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부도는 팔각원당형으로 규모가 큰 편이고, 부도비는 법인 국사의 행적이 소상히 적혀 있어 중요한 사료 비().  

    보원사지 불상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불상은 백제시대의 미륵반가사유상 철조여래좌상 철불좌상이 있으며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금당지

    금당지 주변에서 확인된 초석의 종류는 방형에 원형 주좌가 도드라진 초석, 고막이 초석, 귀 고막이 초속 등 3가지로 분류된다  

    옛 절터에 있었던 석조물이나 기왓장을 한곳에 모아 놓은 곳이 있다.보원사지 출토 유물사진과 보원사지 복원을 위해 옆에 조그마한 사찰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출토된 보물들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이곳에는 모조품만 있다.

     

     

     

     

    서산 보원사지 오충 석탑.jpg
    사진은 보원사지 오층석탑 모습
     

     

    보원사지 법인국사보승탑.jpg
    사진은 보원사지 국사보승탑비 모습
     

     

    서산 보원사지 금동여래입상.jpg
    사진은 보원사지 금동여래반가사유상
     

     

    보원사지 철조여래좌상.jpg
    사진은 보원사지 철조여래좌상 모습
     

     

    보원사지철불좌상.jpg
    사진은 보원사지 철불좌상 모습

     

     

    skcy21@newsportal.kr

     

     

     

     

     

    backward top home